장애아만큼이나 어려운 비장애 형제자매를 키우는 일
저는 9살 된 자폐스펙트럼 장애아를 키우는 엄마입니다. 장애아의 부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는 것, 정말이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만큼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 만큼이나 어려운 것이 비장애 형제자매를 심리적으로 위축되지 않게 잘 키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애아를 둔 가정에서 비장애 형제자매들은 상대적으로 부모의 관심을 덜 받고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쉬우며, 어릴 때부터 장애아와의 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보고가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저희 집은 둘째 아이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고 첫째 아이는 비장애아입니다. 다행히도 자폐스펙트럼 둘째 아이는 형이 도와주기도 했을뿐더러 형이 하는 것을 관심 있게 보고 따라 하는 일이 많아 성장에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얼마나 다행인지요!
하지만 반대로 어릴 때부터 첫째 아이는, 장애를 가진 동생 때문에 힘들고 지친 저에게 형 노릇을 강요받았고 응석도 별로 부려보지 못한 채 자랐던 것 같습니다. 둘째 아이 때문에 너무나 지치고 속상할 때에는 저도 모르게 첫째 아이에게 화도 많이 냈습니다. 또 첫째 아이가 뭔가 제대로 하지 못할 때에는 '너까지 왜 이러니?'라는 모진 말로 다그쳤던 적도 있었습니다. 동생과는 다르게 스스로 잘 자라 주는 아이에게 감사했어야 했는데 말이죠.
항상 우리 집의 첫 번째 관심은 발달이 느린 둘째의 성장이었습니다. 엄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하고 그 안에서 사랑을 충분히 받아야 할 첫째는 제가 둘째 치료실을 전전하는 동안 유치원 돌봄 교실에 늦게까지 남아있었습니다. 저녁때는 에너지가 소진된 상태인 저에게 애정 어린 눈빛을 받기 어려웠을 테죠.
안 그래도 예민하고 소심한 성격의 첫째 아이는 조금씩 불안한 기색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생 시절 친구들과 두루두루 어울리지 못하고 본인이 의지하는 딱 한 명의 친구에게 매달렸습니다. 그 친구만 찾고 그 친구가 유치원에 안 오면 혼자 노는 식이었습니다. 자존감도 점점 떨어지는 듯 보였고 또, 본인에게 크게 관심이 없고 부모님을 힘들게만 하는 동생을 미워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저는 그 당시 둘째의 상태가 많이 좋아지면 첫째 아이도 안정감을 찾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 날이 오면 저도 첫째에게 더 잘해줘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하지만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많이 좋아지는 시간이 빨리 오지 않았습니다. 결국 첫째 아이는 초등학교 저학년 때 틱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고 걱정과 불안, 낮은 자존감 문제로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어린 나이에 '엄마, 아빠가 죽으면 자기가 동생을 책임져야 하냐'는 질문도 하곤 했죠. 아무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큰 짐을 스스로 지고 있는 아이가 너무나 불쌍하고 미안했습니다.
'다시 태어나면, 아니 앞으로는 더 많이 챙길께'
다행히 첫째 아이의 반복 행동은 자신의 의지로 멈출 수 있기에 틱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불안한 심리상태 때문에 놀이 치료, 상담 치료 등을 받기 시작했고, 다행히 복지관의 비장애 형제자매 프로그램도 찾아서 이용하고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심리 상담, 시와 구에서 운영하는 무료 놀이치료 등을 이용했기에 큰 비용 부담 없이 아이의 힘든 마음을 다독여줄 수 있었습니다.
현재는 곧 사춘기 문제도 겪게 될 아이에게 조금 더 장기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주 1회의 상담도 물론 큰 도움이 되지만, 매일 아이와 함께하는 부모의 변화가 가장 중요할 테죠. 저도 그간 소홀히 했던 첫째 아이와 시간도 더 보내고 어려운 마음을 공감해주기로 굳게 마음먹었고 매일매일 사랑한다는 말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의 심리적 어려움을 알고 많은 노력을 하며 느낀 것은 장애아를 키우는 가정은 많이 겪는 문제이지만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벅차다는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점점 비장애 형제자매에 대한 관심과 관련 프로그램이 늘어나고 있는 점은 환영할 일이지만 사회가 조금 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천부적 피아노 실력을 가진 자폐증 동생과 그의 형이 가족이 되어가는 모습을 그린 영화 '그것만이 내 세상'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남편의 폭력에 못 이겨 어린 아들을 놔두고 집을 나온 엄마(윤여정 분)는 힘든 암투병을 하며 병원에 누워, 다시 만난 큰 아들 조하(이병헌 분)에게 얘기합니다. '미안하다. 다시 태어나면 너만 챙길 거다'라고요.
장애아 동생을 돌보고 치료실에 전전하느라 큰 아이에게 신경을 못 써준 시간들이 떠오르며 저도 마음속으로 다짐합니다. 이제부터라도 그 시간까지 합쳐서 더 잘해주리라, 더 많이 챙기겠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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