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폐증 분야의 세계적은 권위자인 배리 프리전트가 쓴 책 '독특해도 괜찮아'는 제가 우리 아이 때문에 힘들던 시절 무엇에 홀리듯 집어 든 책입니다. 아이를 어떻게든 '정상'에 가깝게 만드는 데에 촉각이 곤두서 있던 시절이었죠. 아이의 발전을 위해 어떤 치료기관에서 무슨 치료를 할지, 집에서 부모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닥치는 대로 찾던 때에 제목부터 관점을 달리하는 책이었습니다. '독특해도 괜찮다고?' '난 이 독특함을 어쩔 줄 몰라 평범하게 바꾸고 싶은 엄마인데?' 반감이 생기면서도 뭔가 저의 혼란과 상처를 토닥여 줄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이렇게 읽어 내려간 책은 자폐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함께 할지에 관해 적혀있었습니다.
'자폐성 행동'이 아니라 '사람'의 행동입니다
자폐아를 둔 부모들은 아이의 발달이 느린 것도 걱정이지만 주변의 이목을 끄는 소위 아이의 문제행동, 즉 자폐성 행동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그런데 이 책 서두에 나온, 일반인도 자폐증을 가진 사람의 행동을 모두 한다는 내용은 제 마음을 조금은 편하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이 뭔가 사달라고 조를 때, 얼마나 더 차를 타야 하는지 물을 때 같은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며, 어른들도 남들이 없을 때는 혼자 중얼거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너무 기쁠 때 자리에서 폴짝폴짝 뛰거나 불안할 때 마음을 안정시키는 자신만의 방법을 쓴다는 점입니다. 단지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보다 더 쉽게 흥분하고 남을 의식하지 않고 이런 행동들을 한다는 점이 다를 뿐이라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런 '다른 행동'을 보이는 자폐증 아이를 본다면 그 행동을 못하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행동이 나오게 된 원인과 의도를 파악하는 것, 즉 '왜'라는 의문을 가지라고 조언합니다. 이유 없는 문제 행동은 없다고도 덧붙이면서 말이죠.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은 정서, 생리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기 힘든 것이 특징으로, 감각에 아주 예민하거나 둔감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정서 상태를 조절하려고 쓰는 극복 전략이 '자폐성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특징인 반향어도 다 의미 있는 의사소통의 일종이라고 말하며 조금만 귀를 기울이면 이해할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불안이 높은 자폐아들은 일상이 바뀌는 것을 힘들어하므로 이것을 이해하고 일상을 바꿀 때에는 충분한 설명과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도 강조합니다. 아이가 보이는 돌발 행동은 무엇인가 아이를 힘들게 한다는 것이므로 그것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 그들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말이죠.
저자는 자폐증은 병이 아니고 사는 방식이 다른 것이므로 이들을 바꾸거나 고치려 하지 말고 그들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와 행동, 관점을 바꾸는 것이 자폐증을 이해하는 옳은 방법이라고 얘기합니다.
자폐증과 함께하려면
자폐증 아이와 잘 소통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깊은 관심으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고,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생각하며 아이의 아주 작은 신호도 잘 파악합니다. 또한 아이와 그 가족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합니다.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아이를 혼내는 대신 오렌지를 나눠 먹으며 유대 관계를 맺은 교장 선생님, 아이의 관심사를 이용해 체육 활동을 유도한 선생님, 쿠키를 만들며 수업하는 언어 치료사, 사회성 향상을 위해 교내 매점을 열어 일반 학생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한 선생님의 예는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합니다.
저자는 자폐증 아이를 키우리면 비슷한 가족과 유대관계를 맺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자폐증이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는 의사, 치료사, 교사, 인터넷, 책 등에서 필요 정보와 조언 얻지만 저자의 경험 상 가장 소중하고 힘을 얻을 수 있는 지혜는 이미 같은 길을 걸어 본 다른 부모로부터 얻을 때가 많다는 글에서 저도 사명감을 느끼고 제 경험담을 더 열심히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또한 자신의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의사, 치료사 등의 전문가가 아니라 부모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부모의 본능을 믿으라고 합니다. 의사나 치료사가 주 40시간 이상의 치료를 권유해도 내 아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부모이므로 아이의 상태와 상황을 보고 부모가 판단하는 것처럼 말이죠.
이런 아이를 둔 부모는 절망이 앞섭니다.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라도 중요한 것은 희망을 갖는 것, 그리고 자폐증 아이에게서 고난이 아닌 새로운 가능성을 보는 일이라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받은 진단명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아이에게 나은 미래를 만들어주려면 어떤 것을 해줄지 생각하는 것이겠지요?
인간의 능력에 한계는 없고 자폐증 여부에 관계없이 모든 사람에게 발달은 평생 계속되는 과정이란 글은 저에게 참 와닿았습니다. 또, '사람은 기대를 따르게 되어 있다'라는 말은 자폐스펙트럼 장애인에게도 해당되며 아이를 향한 존중과 관심, 잘하리라는 기대가 아이를 성장시킬 수 있다고 하니 오늘부터라도 아이를 안타깝게 보는 대신 '너도 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지고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저자는 많은 부모들이 자폐증 진단을 받은 아이를 위한 최고의 방법을 묻지만 아이를 '정상'으로 만드는 전문가나 치료법, 병원은 없다고 말합니다. 2013년 발표된 연구에서 자폐증 진단받은 전체 아동 가운데 증상이 호전되어서 더 이상 자폐 기준에 해당되지 않게 된 아이는 극소수 있긴 하지만 그렇게 회복된 이유는 무엇인지 밝혀내지 못했다고 합니다.
템플 그랜딘과 같이 자폐 범주성 장애가 있어서 성공한 많은 사람들도 자신의 삶은 즐기며 살고 있지만 자신이 회복되었다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 자폐증은 자신의 일부이며 평생 함께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회복'만을 목표로 삼으면 아이들이 커가면서 보여주는 사소한 성과와 작은 발전을 통한 사랑스러운 모습을 놓치게 되다는 글은 정말 저에게 크게 와닿았습니다.
특정 목표, 예를 들어 '말을 할 수 있다'에만 집중하면 말기 전 부모의 손을 잡아끌어 냉장고 앞으로 가는 것 또는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거나 무언가를 가리키는 의도적 의사소통 같은 아이의 작은 발전을 기뻐할 수 없겠죠. '우리 아이가 말은 할 수 있을까?' 또는 '대학에는 갈 수 있을까?'라는 질문보다 '우리 아이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답을 찾는 부모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 가족과 아이의 삶을 돌아보다
이 책을 읽으며 앞으로 꼭 실천해야겠다고 생각한 몇 가지를 적어봅니다.
현재의 아이의 모습이 실망스럽더라도 기대를 크게 가질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든 사람은 다른 사람이 기대한 만큼 해내고 싶어 하고 성장하니까요. 그리고 자폐아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발달은 평생에 걸쳐 진행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매일매일의 작은 발전에 기뻐할 작정입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하루하루가 쌓여 우리의 인생이 되니까요.
또한 치료실, 기관, 집에서 인생의 많은 부분을 보내는 대신 아이에게 필요한 도움을 주면서 세상으로 최대한 데리고 나오겠습니다. 인간은 다양하고 폭넓은 경험을 할 때 크게 발전하며 자신이 가진 능력을 발휘한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도 돌이켜보면 모든 치료를 잠시 끊고 타지에서 한 달 정도 생활했을 때 언어와 사회적 기술이 많이 발전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이를 고쳐서 '정상'으로 보이게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 자기 결정 능력을 키워 스스로의 삶을 통제할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할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자폐아를 둔 모든 부모가 원하는 것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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