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성장합니다
우리 아이만 성장이 멈춘 것 같은 느낌, 아무리 치료실을 전전해도 발전이 없는 느낌, 자폐스펙트럼 아이를 둔 부모들은 공감할 것입니다. 아니면 아주 조금씩 발전은 하지만 이것이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크는 것인지, 치료의 효과로 그나마 발전한 것인지 헷갈릴 때도 허다합니다.
그렇다고 치료를 안 할 수는 없고 답답한 마음을 가진 채 기계적으로 치료실을 전전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 그랬으니까요. 다른 아이들은 일상의 모든 것에서 자연스럽게 배우면서 무럭무럭 성장하는데, 우리 아이는 돈도 많이 드는 언어 치료를 몇 년을 다녀도 언어가 느는 건지 긴가민가였습니다.
사회성을 키우려고 한 놀이치료도 사회성이 늘긴 하는 건지, 새로운 장난감만 만지작거리다 오는 건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많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가성비'가 안 나온다는 생각 때문에 괴로운 마음도 컸죠.
하지만 아이가 처음 자폐스펙트럼 관련 치료를 시작한 지 5년 이상이 흐른 지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모든 아이들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일지라도, 자신만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음을요. 아이의 현재의 상태로 미래를 예측해서 섣불리 절망하거나 희망을 저버리지는 말아야 함을요.
아이는 부모가 믿는 만큼 자랍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한 1학년 가을이었습니다. 저학년 때는 자람반 도움을 받지 않고 일반반에서 지내기로 했기 때문에 학교에 보내고도 학교 생활은 잘하는지, 담임 선생님이나 친구들에게 피해 가는 일은 안 하는지 항상 걱정이었죠. 학습적인 부분도 1학기 내용은 7세 때 학교준비반에서 다뤘어서 걱정이 덜했지만 2학기 내용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 가방에서 학교에서 활동한 종이 한 장을 꺼냈는데 그 종이에는 '평화는 엄마랑 폭포를 바라보는 거야'라고 적혀있더군요. 그때의 만감이 교차하며 울컥하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아이가 평화의 뜻을 알고 썼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은유적 표현은 더더욱 할 줄 모르는 아이고요. 아마도 평화에 대해 공부하면서 각자 평화의 의미를 써보는 활동에서 아이가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했을 때 선생님이 아이가 평소에 좋아하는 것이나 마음이 편안해지는 게 무엇인지 이끌어내어 쓰게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중에 알림장을 통해 다른 아이들이 쓴 글도 볼 기회가 있었는데, 말 그대로 평화의 사전적 의미를 쓴 아이도 있고 '평화란 가족이 사랑하며 지내는 것', '친구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게임하며 편하게 쉬는 것' 등등 초등학교 1학년이 쓸 만한 내용이 쓰여 있었습니다.
우리 아이는 어릴 때부터 시각 추구가 심해 물에서 뭔가 떠내려가는 것과 구슬 굴러가는 것 등에 많이 집착했습니다. 변기에 화장지를 넣고 물을 내리면 회오리를 그리며 내려가는 것을 좋아해 변기 물을 수십 번 눌러댔죠. 집 근처 하천에 가서 풀들을 쉴 새 없이 뜯어 물에 던지고는 떠내려가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습니다.
아이의 이런 특성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의 흐름을 볼 수 있는 폭포를 좋아하게 만든 거죠. 다행히 학교 가는 길에 공원을 새로 조성하면서 만든 작은 인공 폭포가 있어 아이와 저는 등하굣길에 자주 폭포를 감상했습니다. 바쁜 등굣길에도 폭포가 흐르는 날이면 행복해하며 더 힘을 내서 교문을 들어가는 느낌이었고, 하굣길에 폭포 앞 바위에 앉아 한동안 폭포를 바라보며 좋아했습니다.
아이가 4살이 되어도 엄마, 아빠라는 말을 하지 못할 때를 돌아봅니다. 그때는 솔직히 말하면 희망이 별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과연 커서 엄마, 아빠를 못 부르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울며 잠 못 이루는 날도 많았습니다. 그런데 2학년인 지금 '평화는 엄마와 폭포를 바라보는 거야'라는 글을 써오다니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비록 엄마지만 남과 같이 하는 기쁨을 알다니요!
저는 다짐했습니다. 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폭포를 많이 보여주기로요. 세상의 많은 것이 불안할 아이의 마음에 '평화'를 주는 것이 같이 폭포 보기라면 무조건 해줘야죠. 매일 자기만의 속도로 조금씩 발전하고 있는 아이와 함께 미국의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러 갈 날을 상상해봅니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커서도 순수하고 해맑은 얼굴로 행복해할 아이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미소가 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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