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실 밖의 다양한 경험
주변에 보면 아이를 치료실에 데리고 다니면서 대부분의 시간을 쓰는 부모님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치료의 적기가 있다', 'ABA치료의 경우 주 40시간 집중적으로 해야 효과가 있다' 등등 부모를 치료실로 내몰게 만드는 말들을 들으면 자폐아를 둔 부모는 누구라도 그럴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도 아이가 5세일 때부터 7세까지는 치료실에 하루 1~2 시간 정도는 할애했지만 하지만 마음속의 확고한 생각은 '아이가 그 시기에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은 최대한 경험하고 즐기자'였습니다. 그래서 주중에는 치료실을 다니더라도 주말만큼은 가족끼리 야외로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다행히 부모님이 서울 근교에서 마당이 있는 전원주택에 사셔서 그 덕을 톡톡히 봤습니다. 그곳에서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오감을 자극하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었던 점은 지금 생각해도 아이의 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봄이면 모종도 심고 벚꽃이 피고 지는 것을 코 앞에서 감상했습니다. 여름이면 텃밭에서 가꾼 토마토, 수박, 가지, 고추, 매실 등을 따며 온갖 풀벌레를 잡으며 놀았고 가을에는 흙을 만지며 고구마를 캐고 지렁이와도 친구가 되어보았습니다. 눈이 많이 온 겨울날은 땀 흘리며 빗자루로 눈도 쓸어 보고 남의 눈치 안 보며 눈싸움도 했지요. 지금 생각해도 이런 환경을 만들어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입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아이와 가기 참 힘든 곳, 미술관과 박물관일 것입니다. 별 관심이 없는 아이에게, 큰 소리 내어서도 안되고 뛰지도 말아야 하며 작품에 가까이 가면 안 되는 등의 제약이 많은 장소는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들은 타인의 시선이 두렵고, 아이 통제도 힘들다 보니 미술과이나 박물관에는 가볼 엄두조차 못 내곤 합니다.
하지만 저는, 특히 제가 가보고 싶거나 아이가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질만한 전시는 아이를 데리고 많이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장애등록이 된 후에는 대부분의 미술관 박물관이 50% 할인 또는 보호자 입장료는 무료였기에, 10분 만에 한 바퀴 돌고 나가자며 제 손을 끌어당기는 아이가 많이 밉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아이 때문에 주의도 여러 번 받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도 빈번했습니다. 아이의 상태를 알 리 없는 전시 관계자들에게 호된 주의를 받고 그런 상황이 너무 비참하게 느껴져 눈물을 쏙 뺀 일도 기억납니다. 하지만 덕분에 아이는 직접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예절을 조금씩 배울 수 있었고 다양한 공간에 와보는 경험을 쌓으며 새로운 장소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아이와 함께하는 미술관, 박물관 나들이가 그나마 수월하게 느껴지니 참 다행입니다.
저는 또한 두 아이(비장애아 첫째와 장애아 둘째)를 데리고 여행했을 때를 잊지 못합니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둘째가 6세일 때 제 동생이 살고 있는 미국으로 가서 한 달간 지내기로 마음먹었을 때, 내가 과연 할 수 있을지도 의심스러웠지만 한 달간 치료를 빠진다는 것이 더 큰 걱정이었습니다. 하지만 당분간 오지 않을 기회인 것 같아 감행했고, 아이는 기상 악화로 캐나다까지 가서 1박을 하고 오는 해프닝까지 겪은 비행도 잘 견뎌주며 이모와 미국이라는 색다른 장소에서 색다른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그때 놀란 점은 언어 치료를 하지 않아도, 또 오히려 우리말 자극이 덜한 곳에서 아이의 언어 능력이 확실히 향상되었다는 것입니다. 미국 여행을 계기로, 아이에게 치료실의 자극뿐 아니라 세상의 다양한 자극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정말 중요함을 깨달았고, 힘들더라도 아이를 세상 속으로 내보내는 일을 계속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해외여행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이는 동네 놀이터에서, 산과 들에서, 바다 등 자연에서, 또 사람들이 모이는 다양한 장소에서 자극을 받고 한층 성장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아이를 발전시킨, 시기에 맞는 적절한 중재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워낙 증상이 다양하므로 우리 아이가 도움받았던 치료가 모든 아이들에게도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저의 경험이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우리 아이를 눈에 띄게 발전시킨 치료에 대해 나눠볼까 합니다.
일단 문제 행동이 많고 감각 추구가 가장 심했던 4살 때 우연히 시작한 '모아 애착'이라는 치료는 아이의 안정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8~10 팀 정도의 엄마와 아이로 구성된 그룹이 음악에 맞춰 춤도 추고 아이를 업거나 안으며 다양한 놀이를 하는 치료였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한 팀이 되어 팀 별 간단한 경기도 하고 그 시간만큼은 웃고 즐기며 아이와의 유대관계를 강화, 애착을 증진시킬 수 있었습니다.
아이가 5세에 시작한 ABA치료도 다행히 아이와 잘 맞아서인지 언어, 인지가 눈에 띄게 느는 것을 느꼈고 문제 행동도 많이 감소했습니다.
6세 때는 좌뇌 우뇌의 균형을 개선시키고 영양을 강조하는 사설 센터에서 다양한 자극 치료를 받을 기회가 있었는데 이때도 아이의 발전이 눈에 보였습니다. 센터 이전과 비용 문제로 오래 치료를 받진 못했지만 그때 얻은 다양한 자극과 영양학적 지식은 지금까지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7세 때 다닌 학교 준비반은 초등학교 적응과 학교 내에서의 규칙, 다양한 놀이 방법 및 사회성을 증진시키는데 실질적 도움이 됐습니다. 지금까지 나열한 것은 우리 아이에게 효과가 좋았던 중재 방법이었습니다. 어쩌면 치료의 효과라기보다 아이가 커가며 자연스럽게 발전할 것일지도 모를 일입니다.
모든 아이들은 그들만의 강점과 약점이 있으므로 결국 부모가 아이를 잘 관찰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중재가 무엇인지 찾아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와 부모가 너무 지치지 않게, 그리고 아이의 자립과 행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자세인 것 같습니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현재, 이 순간 경험할 수 있는 행복을 놓쳐서도 안되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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