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이상한 점을 느끼다
첫째 아이를 키워 본 경험이 있어서 둘째 아이가 크게 이상하다는 점을 못 느낀 채 두 돌 때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발달 상 조금 느리다고 생각한 부분은 언어였을 뿐, 남자 아이라 말이 늦게 트이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전까지 눈 맞춤도 잘 되고 까꿍 놀이도 좋아하는 등 상호작용도 괜찮고 퇴근해서 오는 아빠를 엄청 반기던 아이가 뭔가 달라졌다고 생각되어 이런저런 걱정을 하던 찰나, 저의 친정어머니가 조심스레 한 마디 하셨죠. 아무래도 병원에 가서 발달 검사를 받아 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이죠.
아이는 두 돌 전후로 분명히 달라져 있었습니다. 불러도 쳐다보는 일이 적어졌고 스스로 뭔가를 가리키는 대신, 제 손을 가져다 어떤 물건을 가리키기 일쑤였습니다. 예를 들어 손이 안 닿는 곳에 놓인 과자를 꺼내 달라는 의미로 스스로 소리를 내거나 손으로 가리키는 대신 제 손을 잡아서 과자 쪽으로 던졌습니다.
언어도 개월 수는 점점 늘어가는데 오히려 예전에는 어눌하게라도 하던 '엄마' 소리도 하지 않는 등 전혀 발전이 없거나 오히려 퇴행하는 모습도 보였죠. 나중에 알게 된 개념이지만 '공동 주의집중 (Joint Attention)', 즉 타인의 관심과 주의를 끌기 위한 가리키기, 보여주기 등이 거의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다
아이가 26개월 때 발달검사를 위해 삼성서울병원 재활의학과를 찾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지고 어느 병원이 좋을까를 찾다가 일단 '소아 정신과'가 아닌 '재활의학과'이면서 대기가 그나마 짧은 곳이 이곳이었습니다.
아직 어린데 '정신과' 진료 기록을 남기기 싫어하는 대부분의 부모들이 발달이 느린 아이들을 데리고 주로 처음 방문하는 곳이 재활의학과인지 저도 처음 알게 된 것이죠. 그곳에서 일단 '언어 지연' 판정을 받고 집 근처의 언어 치료 기관을 찾아 주 3회씩 언어 치료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치료란 것을 하면서 언어는 발전할 수 있을 거란 믿음에 처음에는 마음의 위안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사회성은 점점 의심이 더해졌습니다. 결국 기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의 정확한 상태를 알고 대처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서울시 어린이병원 소아정신과에 진료 대기를 걸었습니다.
그 당시에도 진료 대기는 1년 전후였는데 혹시 갑자기 안 오는 환자가 있으면 좀 일찍 연락이 갈 수 있고 바로 올 수 있어야 한다고 했죠. 저는 그나마 집이 가까운 편이어서 언제든 연락 주시면 뛰어갈 수 있다고 잊지 말고 연락 달라고 했고, 다행히 아이가 30개월 되는 시점에 서울시 어린이병원에서 첫 진료를 볼 수 있었습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찾아 간 병원에서는 아이에게 말도 걸어보고 노는 모습도 지켜본 후 부모 설문지를 작성하게 했습니다. 몇 주 후 다시 찾은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은 심각하게 말씀하셨죠. 아직 아이가 어려서 정확한 진단은 36개월 이후에 나올 수 있겠지만 자폐 스펙트럼이라고 생각하고 그에 준하는 치료를 하라고, 그나마 어릴 때 병원에 와서 빨리 치료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다행이고 자폐 스펙트럼 장애는 조금이라도 어릴 때 개입되어 치료받으면 예후가 좋다는 말씀도 덧붙이셨습니다. 한 동안 말을 잊지 못했고 머릿속이 뒤엉킨 느낌이 들었지만 아직 진단명이 나온 것은 아니라고 애써 위로하며 눈물은 꾹 참았습니다.
아이의 치료에 매달리다
저도 나름의 좋은 대학 나오고 번듯한 직장을 다녔던 사람이었고 아이 둘을 어느 정도 키우고 다시 일을 할 생각으로 이런저런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발달 문제가 닥치니 엄마의 커리어는 다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적기가 있는 아이의 발달을 끌어올리기 위해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요.
그때부터 ABA(응용 행동 분석), 놀이, 모아애착 치료를 알아보고 기존에 다니던 언어 치료와 병행해서 시간과 돈을 쏟아붓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보람 있었던 점은 그룹으로 하는 모아애착(엄마와 아이가 함께 다양한 놀이 활동을 하며 친밀감과 상호작용을 높이는 프로그램) 수업을 하면서 상호작용이 좋아졌고 ABA 치료를 하면서는 문제행동이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폐 스펙트럼 아이의 부모가 되다
저는 아이가 뱃속에 있을 때조차 우리 아이가 남들과 다를 것이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36개월 때 방문한 서울시 어린이병원에서는 결국 자폐 스펙트럼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동안 치료는 하고 있었지만 진단명만은 받지 않았으면 했는데 설마가 현실이 되었죠.
그날 집으로 돌아와서 아이를 붙들고 몇 시간을 울었는지 모릅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벌을 받나 등 온갖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를 뒤덮었습니다. 정말이지 한 두 달은 우울하게 보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내 아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고 조금이나마 일찍 치료를 시작해서 좋은 예후를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점은 다행이었죠.
이렇게 저는 자폐 스펙트럼 아이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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